창작글

고백

풍경소리(양동진) 2014. 7. 13. 07:44

고백/ 양동진

 

갈래머리와 소년은 나란히 풀밭에 누웠다. 뭉게구름이 하늘을 유유히 흐르고,바람에 나뭇잎들이 으스스 몸을 비비며 휘청거렸다.

돌담 옆으로 작은 도랑이 수줍은듯 졸졸졸 흐르다가 이내 잦아들어가고,가끔 경운기 소리에 풀잎위에 앉아있던 고추잠자리가 흔들렸다. 소년은 웃을때마다 갸냘픈 목이 드러나는 소녀를 좋아했지만,짐짓 무관심 한척 무심한 표정을 짓곤했다. 너 무슨꽃을 좋아하니? 소녀가 아침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가늘게 물어왔다. 응,난 꽃따윈 별루야,난 야구를 좋아한다. 강아지풀 잡은 파리한 팔목이 멈칫하며,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년의 눈을 웃음기로 올려다보았다. 눈속에 보리밭의 푸른 물결이 소년의 눈동자에 선명히 맺히는 것이,내리쬐는 햇빛에 잠깐 반짝였다.

해가 오후의 긴 그림자를 따라가고 서쪽으로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잠시 소녀의 어깨가 슬며시 뭔가에 기대어짐을 느꼈다. 단단하고 벌어진 어깨의 느낌은 포근하게 다가왔다. 지그시 눈을 감고,머리채가 팔랑거려도,소년은 꿈쩍도 하지않고, 먼 해를 바라보았다.어머나,구름이 발갛게 물들었네! 소녀가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로 말을 했다. 음, 멋지다! 두 사람의 얼굴위로 엷은 붉은 커텐이 드리워지듯 붉으레 하게 빛났다.

갑자기 소년의 가슴에 물큰,뜨거운 돌덩이 같은 느낌이 몸을 달구었다. 차가운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왔지만, 점점 숨을 쉴수 없을만큼 호흡이 요동을 쳤다. 슬며시 가녀린 소녀의 손에 거칠고 두둑한 손을 얹혔다. 한낮 태양에 달구어진 바위처럼 후끈거렸다. 소녀는 아무 걱정도 없이,물끄러미 붉게 저물어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소년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이울어가는 햇빛에 잠깐 빛났다가,이내 어두어져갔다. 집에 갈까? 소녀가 뜬금없이 홍안의 얼굴을 향해 내뱉었다.

음, 잠깐만...나 할말이 있어! 생뚱맞은 대답이 튀어나오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여주며,천천히 일어나려 했다. 멈칫거리던 소년이 무언가 입에 준비해둔 말을 감추고,

부시시 같이 일어서며, 응 그래! 집에 가자,

돌아오는 발걸음 내내 소년의 입속에서 불쑥부쑥 붉은 장미같은 고백이 머뭇거렸다.

오늘도 그녀에게 건네주려던,가슴 속 사랑의 장미 한송이 다시 넣어둔다.

걸어가는 두 사람의 등뒤로 햇님이 붉으레하게 취해,소녀의 치맛자락을 살풋이 당겼다. 바람에 팔랑거리는 코스모스가

두 사람의 등뒤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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