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양 동 진
어촌 마을에 티브이도 몇 대 없던 시절
토요일마다 찾는 극장을 기다리며
하루를 지나 일주일 넘어 한 달을 살았다
낚시도 헤엄도 지겨울 때
또 다른 세계가 궁금할 때
새마을 운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이장 댁 티브이는 부의 상징
유독 떠오르던 토요명화
음악처럼 신비롭던 장면들이
중독처럼 끊임없이 탐닉했다
총잡이 들이 화약을 내뿜으며
누가 먼저 쓰러뜨리는지
숨 막히게 조바심치고
악한 자는 결국 패배하는 것
정의를 위해선 살인은 당연한 것
많은 이가 죽고 죽이는 장면들
그저 재밌게만 봤던 순망한 눈들
아,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지우고 싶은
헐게 팔아버린 영상에 매달린 시간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불혹을 넘어서야
무엇에 귀 기울이며
무엇에 시간을 써야 하는지
이제 사 조금은 깨달음의 무릎을 꿇었다
그리하여 나는,
알맞게 섭취해야하는 소금처럼
쉽게 끊지 못하는 구름과자처럼
찔끔찔끔 티브이를 본다
그리고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