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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무도 보지 못한 풍경 / 이기성

풍경소리(양동진) 2012. 2. 1. 20:07
아무도 보지 못한 풍경

이기성




가등의 그림자 어두운 길 한쪽 무심히 비추고 있다.

조금전 사내의 차가 쿵 하며 벽돌담을 들이박았고

아직 말끔히 닦여지지 않은 끈적한 흔적은

사내의 머릿속을 채운 채 응고되었던

권태가 허공으로 흘러나온 것에 불과하다.

담배연기가 산발하며 흩어지듯

그도 길의 끝까지

달려가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스펀지를 두드리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리가 박살났을 때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었던

무성한 숲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

헤치고 검은 살쾡이 한 마리

번개처럼 튀어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견인차가 끌고 가는 차의 번호판을

무심히 읽으며 길가의 은행나무는

그가 마지막 부른 이름을

무성한 노란잎으로 바꾸어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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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시인은 196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8년 『문학과사회』에 시 「지하도 입구에서」「우포늪」「아무도 보지 못한 풍경」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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