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누렁이

풍경소리(양동진) 2011. 11. 28. 11:45

                   누렁이 



                                                양 동 진




마당 한 모퉁이 양지바른 곳

황토바닥 배 깔고 새근새근 

한나절을 햇빛에 털 세우면 

번지르르 윤기 나는 참 매끄러운 털

일광욕 하다 가끔 콧등에

먹을 것 찾아 붕붕대는 파리 한 마리에

게슴츠레 눈을 떠  콧바람 흥흥

코언저리 씰룩거리며 그냥 또 자고 


목줄 매인 개의 사명은

집지키는 거란 걸  아는 듯

가끔 지나치는 행인에 컹컹 짖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마저도 끊고

눈빛 던져주어도 멍한 눈 살짝 마주칠 뿐

응, 너냐 하며 다시 졸고 

햇살 속에 마냥 꾸벅거리던 황구

찢어진 입만큼 커다란 하품


아, 무료한 선하품 같은 나날이여!


달력 한 장 찢어진 숫자

빨간 동그라미 입 벌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복날”

불길하게 찍혀 

며칠 후 누렁이 흔적 없고 

주인 잃은 목줄 하나 걸려

개집 그림자만 납작 엎드려 

쓸쓸한 몇 가닥 누런 개털만

바람결에 나풀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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