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
양 동 진
마당 한 모퉁이 양지바른 곳
황토바닥 배 깔고 새근새근
한나절을 햇빛에 털 세우면
번지르르 윤기 나는 참 매끄러운 털
일광욕 하다 가끔 콧등에
먹을 것 찾아 붕붕대는 파리 한 마리에
게슴츠레 눈을 떠 콧바람 흥흥
코언저리 씰룩거리며 그냥 또 자고
목줄 매인 개의 사명은
집지키는 거란 걸 아는 듯
가끔 지나치는 행인에 컹컹 짖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마저도 끊고
눈빛 던져주어도 멍한 눈 살짝 마주칠 뿐
응, 너냐 하며 다시 졸고
햇살 속에 마냥 꾸벅거리던 황구
찢어진 입만큼 커다란 하품
아, 무료한 선하품 같은 나날이여!
달력 한 장 찢어진 숫자
빨간 동그라미 입 벌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복날”
불길하게 찍혀
며칠 후 누렁이 흔적 없고
주인 잃은 목줄 하나 걸려
개집 그림자만 납작 엎드려
쓸쓸한 몇 가닥 누런 개털만
바람결에 나풀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