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 천양희 시인 ( 시모음 )

풍경소리(양동진) 2011. 8. 27. 21:24

 천양희 시인 
1942년 부산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신이 우리에게 묻는 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창작과 비평사 1944) <오래된 골목> (창작과 비평사 1988)등이 있음


 

천양희 시인 ( 시모음 )

 

 

천양희


1942년 부산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재학중인 1965년 현대문학지에 「정원한 때」 「아침」 으로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등단하였다.
1966년 대학을 졸업한 후, 18여 년의 공백을 거쳐
1983년에 첫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을,
1988년에 두 번째 시집 『사람 그리운 도시』를 출간했다.
그밖에도『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창작과비평사 1994), 『오래된 골목』

(창작과비평사 1998) 등이 있음.
제43회 현대문학상 수상.현재 월간 『에세이』 『현대 불교』지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삶에게 길을 묻다.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 하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힐끗 보았지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도 나는 사람 속에서 아우성치지요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나를 당기소서

49세에 [늑대와 함께 춤을]을 써서
작가가 된 마이클 블레이크와
보길도에 귀양 갔다 65세에 [어부사시사]를 쓴 고산 윤선도와
일생 동안 한번도 여자를 못보고 82세에 죽은 수도승 미하일 톨로토스와
죽을 때, 가슴을 가시에 찔리면서
일생에 단 한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새와
원시림의 높은 가지 위만 날면서
지상에는 내려오지 않는 모르포나비와
아침 이슬만 먹고 사는 부전나비와
백마강 고란사에서만 사는 고란초와
평지에선 살지 않고
바위 위에서만 사는 기린초와
진실로 우리는 그림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동생 테오에게 마지막 편지르 보낸 고호와
병에 걸린 것을 깨닫지 못하는 문명사회에서,
자기가 환자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 [아웃사이더]를 쓴 콜린 윌슨과
눈이 두 개 귀도 두 개인데
입이 하나밖에 없는 것은
두개를 보고 두개를 듣고
말은 하나만 하라는 것이며
하나를 말하기 위해선
둘을 보고 둘을 들어야 한다는 간디와
어머니와 정의 중에서 선택하라면
나는 어머니를 선택할 것이라던 까뮈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네
신이여, 부러지도록 나를 당기소서
다시 부러지도록 힘껏 당기소서.

 

 


 

친구

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한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더러워진 발은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안 될 것은 정신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투털대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지나간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어떤 날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막무가내 올라간다
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
상상봉에 다다르면
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다
굽은 능선 위로
생각의 실마리들 날아다닌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바람소리
生覺한다는 건
生을 깨닫는다는 것
생각하면 할수록 生은 오리무중이니
생각이 깊을수록 生은 첩첩산중이니
생각대로 쉬운 일은 세상에 없어
생각을 버려야 살 것 같은 날은
마음이 종일 벼랑으로 몰린다
생각을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
생각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
생각 때문에 밤새우고 생각 때문에 날이 밝는다
생각이 생각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한 자리

바람 불다 비가 와 햇빛이 솔밭 가지로
지나가버려
나무 뒤에 나무처럼 서서 새들은 어디 갔나
네 이름 묻고 싶구나 바람 불 때마다 천지에 나를 놓
을?
나를 놓을 어디?


바람 부니 꽃이 꽃자리 살펴보던 때가
그냥 지나가버려
바위 위에 바위처럼 앉아
꽃들은 다 어디 갔나 네 이름 받고 싶구나
바람 불 때마다 천지에 내 마음 뿌릴?
마음 뿌릴 어디?


바람이여, 나는 너무 늦게
흔들린다 나도 가끔
세상 빠져나가고 싶은 바람이다
바람을 꽃처럼 피우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산 자로서
조용히 접혀 있다

 

 

 

 마음의 수수밭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 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 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 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 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 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 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 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소리꾼

소리 하나로 산을 휘어잡은 새들은
타고난 소리꾼이다 바람보다 먼저 산을
깨우고 계곡 아래 물살도 산정으로 당긴다 당기듯이
소리친다 소리치며 산그림자 가볍게
놓아버린다 숲속이 숲의 속이 오래
울린다 저토록 산이 속으로 울다니! 속으로 우는
것들은 울음도 힘이 된다는 걸 안다 울어라
새여,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여 소리 하나로
산을 울릴 때 너는 소리꾼인 것이다 소리의
꾼인 것이다 시 하나로 세상을 휘어잡은 시인들은
타고난 소리꾼이다 몸보다 먼저 혼을
깨우고 한순간을 영원으로 밀어올린다 밀어올리듯이
소리친다 세상 속이 세상의 속이 오래
울린다 저토록 세상이 속으로 울다니!속으로
우는 것들은 소리도 힘이 된다는 걸 안다 울어라
시여 자고 일어나 울어라 시여 시 하나로
세상 울릴 때 너는 소리꾼인 것이다 소리의

꾼인 것이다

 

 

 

배경이 되다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모든 문 다 열어놓는다고
그가 말했을 때 꿈꿀 수 있다면 아직 살아 있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나에게만 중요한 게 무슨 의미냐고
내가 말했을 때 어둠을 물리치려고 애쓴다고
그가 말했다
생각의 끝은 늘 단애라고
그가 말했을 때 꽃은 나무의 상부에 피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세상에 무늬가 없는 돌은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나이테 없는 나무는 없다고
그가 말했다
바람이 고요하면 물결도 편안하다고
그가 말했을 때 산은 강을 넘지 못한다고
내가 말했다
더이상 할말이 없을 때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었다

 

 

 

 

마음의 지진

제 이름 부르며 스스로 울어봐야지
제 속의 비명을 꺼내 소리쳐봐야지
소나기처럼 땅에 패대기쳐봐야지
바람에 몸을 길들여봐야지
늪처럼 밤새도록 뒤척여봐야지
눈알 속에 박힌 모래처럼 서걱거려봐야지
사랑 때문에 허리가 남아돌아봐야지*
어느날 문득 절필해봐야지
죽어라고 살기 위해 잡문을 써봐야지
사람 때문에 마음바닥이 쩍쩍 갈라져봐야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봐야지
마침내 갈 데가 없어봐야지

 

 

 

 

오래 젖은 집

비 오는 날입니다 골목이 수런대면서 집들이
들썩거립니다 지붕은 입을 다물고 물끄러미
마당을 내려다봅니다 십 년을 살던 집 집들이
오래 그늘을 늘이고 사람들의 마음이 어둑해
있습니다 근심 많은 것들의 하루가 길어집니다 이제
어디에 머물든 두렵지 않습니다 아직 산정에 닿지 못한
사람들이 언덕을 쓸며 지나갑니다 한때의 푸른 잎들
피었던 거 다 어디로 쓸렸는지 몸 한쪽이 기우뚱합니 다

능선 따라 가는 산길 높았으나 하산하는 물길 낮습니다 오늘까지
우릴 지켜준 건 나무처럼 곧은 마음이었습니다 슬픔도 견뎌 내면
어려움 속에서도 힘이 된다는 걸 아는 자 있을
것입니다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소리 골짜기만큼
깊어집니다 제 속에다 간절함을 품은 까닭입니다 묵묵한
바위들은 비에 젖는 생을 모를 것입니다 나는 빗소리
한 줄 당겨놓고 기다립니다 제 생(生) 볕들기 기다리는 것이
너무 오래 젖은 집인 것입니다
비 오는 날입니다 젖은 집들 위로 하늘이 조금
밝아지고 있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면서

떨어지는 폭포를 보며 물길에도 절망이 있을까 생각 하면서

고갯길을 내려오면

바닥이 다 보이는 시냇물 속 웅크리고 있는 조약돌에도

아픔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논둑길을 걷다 보면

하늘 한번 못 보고 고개 숙인 벼이삭에도 고뇌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징검다리 건너 가면

쉬지 않고 아래로만 내려가는 물에도 욕심이 있 을까 생각하면서

무덤 곁을 지나다 보면 모난 곳 한군 데도 없는 둥근 것 속에도

불만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솔밭 사이로 가다 보면 한평생 한 색깔로 홀로 선 청 솔에게도

변절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하늘을 보다 보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에도 정처가 있을까 생각하 면서

돌아오다 보면......

 

 

 

 

직소포에 들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
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水宮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바위들이 몰래 흔들 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絶唱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최고봉

높은 산에 오를 준비를 할 때마다 장비를 챙기면서
운다고 고백한 산사람이 있었다

 14번이나 최고봉에 오른 그가 무서워서 운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비밀을 안 것처럼
나도 무서웠다 산 오를 생각만 하면 너무 무서워서

 싼 짐을 풀지만 금방 울면서 다시 짐을 싼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도 울면서 짐을 싼 적이 있다

그에게 산이란 가야 할 곳이므로
울면서도 떠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무서워 울면서도
가야할 길이 있는 것이다

능선에 서서
산봉우리 오래 올려다보았다
그곳이 너무 멀었다

 

 

 

 

마음의 경계

햇살이 수면에 어룽거린다 물방울 모였다 물거품 되고
물떼새들 갈대숲에서 낄룩거린다 가슴검은물떼새!
그 이름만으로 눈시울 붉어져 물 속에 물구나무 선 나 무들
물결 속에 제 속을 허문다
허물어야 할 것은 내 속의 강둑들 모래톱들 경계 없는 강이
나는 좋다 흐르다 멈춘 강이 있다고는 하였으나
깊은 물소리 듣지 않는다면 누가 강물을 밀어 해안까지 가겠는가
강은 수심 깊어 물소리 숨기고 물고기들 잘 때에도 뜬 눈으로 잔다
수심에 잠겨 눈감고도 잠 못 드는 사람들 생(生)은 왜 눈물로 단련되나
그래서 우리가 물길 하나 가졌던가
물길은 물의 길일까 생각하듯 물살 내려갈 때 나도 몇 굽이 내려갔다
물소리 한꺼번에 져 내렸다
마음이 오래 강변에 서 있다
세찬 물결이 어깨를 툭 친다 나아가라고
내려가나 나아가는 물줄기들
시퍼런 것들의 저 서늘한 기운
오늘은 내가 붙잡고 가겠다
강 끝까지 해안까지 더 더 끝까지

 

 

 

 

바람을 맞다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 소리「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가 오려나 거위눈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하늘을 볼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같은데
하늘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서울살이 삼십 년 동안 나는 늘 같은데
서울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길에는 건널목이 있고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지요?
산천어는 산록이 맑은 계곡에 살고
눈먼 새는 죽을 때 한 번 눈뜨고 죽는다지요?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살고
주목나무는 고목이 되어도 썩지 않는다지요?
귀한 진주는 보잘것없는 조개에서 나오고
아름다운 구슬은 거친 옥돌에서 나온다지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고
모든 문제는 반드시 답이 있다지요?

사는 것이 왠지 슬픈 생각이 든다고 하겠는지요
슬픔을 가질 수 있어 내가 기쁘다고 하겠는지요.

 

 

 

 

흐린 날

..생각이 먼저 기슭에 닿는다.

강 한 쪽이 어깨를 들어올 린다.

하단(下端)이 저 아랜가. 문득 갈대숲에서 물떼새들 이 달려 나온다.

 여름이 가는군. 나보다 먼저 바다로 든 길이 중얼거린다.

언제 내가 길 하나 가졌던가.

물줄기를 한참 당기면 마음에 들어와 걸리는 수평선.

 세상이 평등하 기를 저것이 말해 준다.

 이런 날은 물가에 오래 앉을 수 있겠다.

물에도 길이 있다고 하였으나 물방개, 소금쟁이, 물잠자리들.

물이 좋아 물 먹고 산다는 것일까.

나는 꿈속 에서도 어안이벙벙한 물고기들을 보았다.

 물의 세계란 그 런 것일까. 물까지도 한잔의 물속에선 흐르지 않는다.

 나 는 또 자주쓴풀 몇 포기 뽑아 잘근잘근 씹는다.

 산다는 건
자주 쓴맛을 보는 것이라던 선배의 말이 오늘은 옳았다.

 

 

 


사람의 일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달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芒草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 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 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외딴 섬

어려운 일은 외짝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실존 때문이라는 말 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직 밝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있 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 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 세상 은 내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라는 말을 나는 믿 지 않았다.

 내가 일어설 때까지는 믿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딴 섬이라는 것을 이제야 겨우 믿게 되었다.

 

 

 

 

하나밖에 없다

나무는 잘라도 나무로 있고
물은 잘라도 잘리지 않습니다.
산을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고
물은 거슬러오르지 않습니다.
길은 끝나는 데서 다시 시작되고
하늘은 넓은 공터가 아닙니다.
시간이 있다고 다시 오겠습니까.
밀물 썰물이 시간을 기다리겠습니까.
인생은 하나밖에 없고
나 또한 하나밖에 없습니다.
시간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상처

상처를 씨앗처럼 심어라.씨앗은 썩어 꽃을 피운다.


상처가 곧 꽃이니......


상처를 꽃처럼 피워라.꽃은 썩어 열매를 키운다.


상처가 곧 꽃이니......

 

 

 

 

너는 나다

함께 있어도 거리를 지키는 벼가 있다
우짖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새가 있다
울음소리로 존재를 알리는 벌레가 있다
하루에 몇십만번 물결치는 파도가 있다
물살이 역류하는 개울이 있다
나무 위에 사는 나무가 있다
잎 끝에 돌기를 가진 꽃이 있다
한평생 물 안 먹는 짐승이 있다
죽어가면서 빛을 달라고 한 사람이 있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내가 있다

 

 

 

 

그것

그것은 쓰고 싶은 연장
그것은 무엇이든 덥석 잡는다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다
그것은 잡을 때 힘이 세고 놓을 때 힘이 없다

그것은 굴리고 싶은 바퀴
그것은 무엇이든 밟고 지나간다
한번 밟으면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밟을 때 힘이 세고 지나갈 때 힘이 없다

한 시절을 주무르고 누르던 사람들의
전기를 읽다 나는 보았다

그들의 손과 발은 얼마나 손발이 잘 맞는 한통속인가

 

 

 

 

운명이라는 것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씩 철썩이고
종달새는 하루에 3000번씩 우짖으며 자신을 지킵니다
용설란은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한 꽃대에 3000송이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습니다
벌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560만송이의 꽃을 찾아다니고
낙타는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도 있고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도 있습니다
운명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

열매를 보면서 꽃을 생각하고

빛을 보면서 어둠을 생각합니다.
꽃은 열매를 위해 피었다 지고
어둠은 빛을 위해 어둡습니다.
별을 보면서 하늘을 생각하고
나무를 보면서 산을 생각합니다.
하늘은 별을 위해 별자리를 만들고
산은 나무를 위해 숲을 만듭니다.

자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참는다는 것

세상의 행동 중에 참는 게 제일이라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든 참기로 했지요
날마다 참으면서 일만 하고 살았지요
참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살 길은 갈수록 구불텅거리고
살림은 출렁대며 흔들렸지요
누가 고해(苦海)속에 뛰어들기라도 하면
파문은 나에게까지 번졌지요
그때 나는 절벽에 매달려 사는 가마우지 새들을 생각했지요
발밑에 밟히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일 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참으면서 사는 일이었지요
그때서야 힘든 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힘들게 산다는 것은 힘쓰고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참고 살수록 삶은 더 구비쳤지요
오늘도 나는 인파 속에서 자맥질하지요
힘껏 살고 싶어 힘내고 싶어

 

 

 

 

물에게 길을 묻다
수초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물속에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물속에서 물만 먹고 살았지요
물 먹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물보라는 길게 물을 뿜어올리고
물결은 출렁대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돌을 던지기라도 하면
파문은 나에게까지 번졌지요
물소리 바뀌고 물살은 솟구쳤지요
연어떼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물가의 잡초들을 힐끗 보았지요
눈비에 젖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물 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물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물 먹고 산가는 것은 물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물 먹고 살수록 삶은 더 파도쳤지요
오늘도 나는 물속에서 자맥질하지요
물같이 흐르고 싶어, 흘러가고 싶어

 

 

 

 

나의 거울

자신을 잘 모를 때
자신을 과신할 때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는 말을 거울삼습니다.

어려운 일을 견뎌야 할 때
힘든 일을 인내해야 할 때
귀한 진주는 보잘것없는 조개에서 나오고
아름다운 옥구슬은 거친 옥돌에서 나온다는 말을 거울삼습니다.

잘못된 일 때문에 후회할 때
실패한 일 때문에 좌절할 때
희망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고
절망보다 더 나은 교사는 없다는 말을 거울삼습니다.

 

 

 

 

시작과 끝

시작이라는 말 처음이라는 말
참 생생生生하지요.
첫눈이 첫발자국이 첫만남이
또 얼마나 푸릇푸릇합니까.
저 보리밭 저 청솔밭
참 청청하지요.
첫해 첫날이
또 얼마나 새록새록합니까.

끝이라는 말 마지막이라는 말
참 멸멸滅滅하지요.
노을이 낙엽이 작별이
또 얼마나 뉘엿뉘엿합니까.
저 서산 저 저녁강
참 냉랭하지요.
가는 해 가는 날이
또 얼마나 얼룩얼룩합니까.

 

 

 

 

외길

가마우지새는 벼랑에서만 살고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삽니다.
유리새는 고여 있는 물은 먹지 않고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들은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고소공포증도 폐쇄공포증도 없습니다.
공중이 저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놓아두시지요.
외길이 나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두시지요.

 

 

 

 

썩은 풀

썩은 흙에서 풀이 돋고
썩은 풀이 반딧불을 키운다
썩은 것이 저렇게 살다니
썩은 풀의 소신공양!
썩고 썩은 풀이여, 마음은
너무 빨리 거름이 되는구나
나는 아직
속 썩은 인간으로 냄새를 풍긴다
풀밭은 또 저만치서
썩은 풀을 피운다

나에게 썩은 것이 있다면
썩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아이

시냇물에 빠진 구름 하나 꺼내려다
한 아이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송사리떼 보았지요
화르르 흩어지는 구름떼들 재잘대며
물장구치며 노는 어린것들
샛강에서 놀러온 물총새 같았지요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 새끼들
풀빛인지 새소린지 무슨 초롱꽃인지
뭐라고 뭐라고 쟁쟁거렸지요

무엇이 세상에서
이렇게 오래 눈부실까요?

 

 

 

 

어떤 하루

건설중인 빌딩 꼭대기에
둥지를 튼 송골매 두 마리가 새끼를 낳아
다른 곳으로 날아갈 때까지
공사를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몇년 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들려와
나를 감동시키더니
우리는 언제 저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궁금해지더니
며칠 전 신문을 보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놀랐느니
아파트 공사장에
까치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아
다른 곳으로 날아갈 때까지
공사를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멜버른이 아닌 우리나라 서울에서 들려와
나를 감동시키느니
이것이 사랑하며 얻는 길이거니
득도의 길이거니
아름다움과 자비는 어디에서나 자랄 수 있는 것

나,오늘 무우전(無憂殿)에 들고 말았네.

 

 

 


산에서의 하루

산그늘이 어둡고 깊다
산자락 끌고 가는 하루가 길다
구멍 속 딱따구리 종일 딱딱거린다
구멍이 제집인 것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래도 나무는 끄떡 않는다
이곳에 와서야 세상에 어처구니없는
나도 끄떡 않는다

바람이 날 한번 긁고 지나간다 흐린 날이다

날씨가 흐리니 아차산 능선이 흐릿하다
저놈의 躍?세상
벼랑 아래 구름비나무 한쪽이
조금 기울어져 있다
저것이 또 비구름 만들라나?
구멍 뚫린 나무처럼 몸이 허하다

바람이 날 한번 긁고 지나간다 흐린 날이다

흐린 날씨에도 처녀치마꽃 둘레를 돌고 있는 말벌들
정신이 돌겠다고 아우성이다 말벌 주제에
나도 주제 모르고 여기까지 왔다
그건 모두 산 탓이다
산자락 끌고 내려오는 하루가 짧다
산 아래 마을 멀지 않았다

 

 

 

 

추억

포도는 익으면 향기를 낸다.
향기 속에 포도밭의 추억이 있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볏잎 속에 들판의 추억이 있다.
꽃은 만발하면 꽃잎을 떨어뜨린다.
꽃잎 속에 꽃밭의 추억이 있다.
사람은 나이들면 주름이 진다.
주름 속에 사람의 추억이 있다.

 

 

 

 

누가 말했을까요?

누가 말했을까요?
살아 있는 것처럼 완벽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하나의 생명일 때 기쁘고 기쁨은 곧 마음의 길을
열어
숨은 얘기 속삭인다는 것을

여린 잎 속의 푸른 벌레와 생각난 듯이 날리는 눈발과
훌쩍거리며 내리는 비가
얼마나 기막힌 눈(目)이라는 것을
그토록 작은 것들이 세상을 읽었다는 것을

누가 말했을까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런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하나의 자연일 때
편하고 편함은 곧 마음의 길을 열어
숨은 얘기 속삭인다는 것을

뒤꼍의 대나무숲 바람소리와 소리없이 피는 꽃잎과
추위에 잠깬 부엉이 소리가
얼마나 기막힌 소리인가를
그토록 작은 것들이 세상을 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보았다는 것을
하늘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을

 

 

 

 



바다는 3%의 소금 때문에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3%의 소금 같은 것입니다
生이란 그렇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3%의 소금처럼 썩지 않는
나를 生生하게 살리는 것입니다

 

 

 

 

 

                                                  

 

넬라 환타지아


 

 

 

                                               

출처 : 백합 정원
글쓴이 : lil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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