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강 영 숙
하늘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 나무의 열매,
한 그루 세월을 붙들고 있다
내 안에서 자라난 그 나무 붉은 피 흐르지 않는다
손바닥 마구 흔들던 잎들 하늘을 뒤덮는다
아이와 나를 막던 바람 홀연히 빠져나가고
가지마다 싱싱한 눈물 울멍울멍,
꽉 채운 동그라미를 무화과 꽃이라 부른다
혈색이 창백한 혈액 종양내과 복도,
웃음 잃은 사람들 차례대로 호명을 기다린다
오래 전, 소아병동에서 노란 위액을 토해내던
차트번호 1137440 어린아이가 스물다섯 청년이 되었다
혈관 불뚝거리는 팔뚝엔 채혈 바늘 마음대로 들락거린다
매연에 질식된 공기와 소통하는
국채보상공원 길을 걷는다
달구벌 대종이 소리를 가둔 채,
제야의 종소리를 준비하고 있다
잎들 뜯긴 나무들 서로를 세차게 껴안는다
봄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나는 희디흰 핏방울 뚝뚝 떨구는 감옥, 무화과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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