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의 꼬리들 (외 1편)
김지녀
빗방울이 진화하고 있는 걸까
둥그니까!
물렁하니까!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지
꼬리를 자르고 달아날지 모르지
도마뱀처럼 보호색을 하고
나뭇가지나 나뭇잎으로 살아가는 걸까
빗방울이 떨어진 자리에 남은 자국을 보면
꼬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것 같아
장대비가 내리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떨어지는
빗방울의 꼬리들이 도로 위에서
강물 위에서 출렁거린다
꼬리들은 이들이들하다
뼈가 없기 때문
뼈가 없는 꼬리는 슬프다
눈물방울이 주르륵 빰으로 떨어질 때
슬픔은 한없이 길어지지만
꼬리는 흔적이 없다
마음이 없다
모래의 느낌으로 흩어지는
빗방울, 빗방울이
나를 향해 떨어진다
개나 고양이처럼 꼬리를 흔들면서
반갑다는 듯이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듯이
안녕, 안녕
크게 꼬리를 흔들면서
내가 모르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학청춘》 2010년 가을호
발설
조개처럼 두 개의 껍데기가 있다면
스스로 나의 관 뚜껑을 닫을 수 있겠지
닫히는 순간 열리는 어둠 속에서
나는 가장 사적이고 사색적인 공기를 들이마시고
모래나 바다 속으로 숨어버릴 거야
입술이 딱딱해질 거야
오늘은 무얼 먹을까?
어떤 옷을 입지? 이런 걱정들로 분주한
나의 인생을 어리고 부드러운 속살로 애무해줘야지
내 몸 어딘가에 있는 폐각근(閉殼筋)을 당겨
살아 있는 동안
죽어 있는 것처럼
한번 닫히면 절대 열리지 않을 테다
이런 생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다섯 개나 열두 개의 주름을 만들어
감추고 싶은 말들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을 테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할 거야
하나의 사원처럼
돌멩이처럼
조개는 고요하고 엄숙하다
죽고 난 뒤에 입을 벌린 조개껍데기 속 무늬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시간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시인시각》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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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녀 / 1978년 경기도 양평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200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시소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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