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미안하다 종순아

풍경소리(양동진) 2011. 4. 29. 22:00

미안하다  종순아


                                  양동진


동생들 입 주리지 않기 위하여 
맏딸인 그녀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졸업도 못했다
그리고 배우지 못한 설움에
어머니를 원망하며 어미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문맹의 여인은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또다시 가난의 굴레아래서 자식을 낳았다
새끼들 입 주리지 않기 위하여 
맏딸을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로
서울의 방직공장으로 보냈다
동생들 주린 입과 학비를 위하여
재봉틀을 돌리고 돌렸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입에선 자꾸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흘러나오고 또다시 세월은 흐르고
문맹의 어미는 농촌의 한글학교를 다니신다.
글을 몰라도 불편하지 않았던 할머니
반쪽이 하늘나라로 가신 후에
고지서며 전화번호부며 읽지를 못해
이웃에게 달려가 읽어달라고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한글학교가 동네에 생기고 나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공부하다가 하우스비닐이 벗겨졌다는  
이웃의 전갈에 두말없이 조그만 밭두렁으로 달려가  
비닐을 흙으로 촘촘히 덮는다.
한글공부도 중요하고
일 년 치 내 먹을거리도 중요하다고
덤덤하게 말하신다.
식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숙제를 받아들고
밭고랑에서 안방에서 편지를 쓰신다.
종순아 미안하다 할 말이 없다
동생들 때문에 초등학교도 졸업 못시켜 줘서
말로는 하셨지만 차마 글로 쓰지 못해
내내 눈물만 글썽이신다.
멍청한 어미 만나서  멍청한 어미 만나서
멍청한 자기로 비하시키는 그 말에
눈물이 왈칵 흘러내린다.
자신이 어미를 원망했듯이
그 자식도 그러했으리라 생각하며
멍청한 어미라고  마음으로 자책하며
스스로 매를 맞는 그 마음이 더 눈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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