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

우체통 / 김미경 (동시)

풍경소리(양동진) 2011. 11. 24. 19:20

우체통

                              김 미 경


고민이 있어요.
들어주실래요?
예전엔 하루에만 수백 통의 편지를 먹던 때가 있었어요.
연말이면 정말 배탈이 날 지경이었어요.
나를 찾는 사람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구별이 없었답니다.
거리에서도 제일 돋보였거든요.
요즘도 더러 배부를 때가 있긴 해요.
다닥다닥 숫자 찍힌 세금 종이들
홍보 선전 우편물이 주르륵
아무리 뱃속을 가득 채워도
삐뚤빼뚤 쓰인
정 담뿍 담긴 편지 한 통이 훨씬 맛 나는 것 같아요.
후덥지근한 여름이건
쌀쌀한 겨울이건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들이면 그저 행복했었죠.
갈수록 힘이 빠져요.
찾는 사람은 점점 줄고
쪼르륵 배곯는 날만 늘어나니 말이에요.
거리에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마다 자꾸만 외롭답니다.
이러다 영영 잊히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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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당선작>


               살구꽃 향기
                          


                                              유 금 옥

민지는 신체장애 3급입니다
순희는 지적장애 2급입니다
우리 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정상입니다

민지가 바지에 똥을 싸면
순희가 얼른, 화장실로 데려가
똥 덩어리를 치우고 닦아 줍니다

다른 친구들이 코를 막고
교실에서 킥킥 웃을 때

순희가 민지를 업고
가늘고 긴- 복도를 걸어올 때

유리창 밖 살구나무가
얼른, 꽃향기를 뿌려줍니다

살구나무도 신체장애 1급입니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이 달려와
꽃 피우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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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당선작>

             사과의 길

                                 김 철 순


엄마가 사과를 깎아요
동그란 동그란
길이 생겨요
나는 얼른 그 길로 들어가요
동그란 동그란 길을 가다보니
연분홍 사과 꽃이 피었어요
아주 예쁜 꽃이에요
조금 더 길을 가다보니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어요
아주 작은 아기 사과예요
해님이 내려와서
아기를 안아 주었어요
가는 비는 살금살금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었어요
그런데 큰일 났어요
조금 더 가다보니
큰바람이 마구마구 사과를 흔들어요
아기 사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어요
아기사과는 있는 힘을 다해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었어요
조금 더 동그란 길을 가다보니
큰바람도 지나고 아기사과도 많이 자랐어요
이제 볼이 붉은 잘 익은 사과가 되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길이
툭,
끊어졌어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길에서 뛰어 내렸죠
엄마가 깎아놓은 사과는
아주 달고 맛이 있어요


         냄비

                 김 철 순

쉿!
조용히 해
저,
두 귀 달린 냄비가
다 듣고 있어

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
냄비 속에 집어넣고 펄펄펄
끓일지도 몰라
그럼, 끓인 말이
어떻게 저 창문을 넘어
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
저 산을 넘어
꽃을 데려 올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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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당선작>


     고무줄놀이
                        


                               김 철 순


고무줄을 길게 묶어서
고무줄놀이를 했어

친구 둘이 고무줄을 맞잡고
팽팽하게 당기면
눈앞에 펼쳐지는 수평선 

나는
폴짝 폴짝
수평선을 뛰어넘는
파도가 되었어.



할미꽃

                         김 철 순

봄이 오면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 위의 할머니 

하늘나라 가신 할머니들
모두 모두
지팡이 짚고
땅으로 내려오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강원일보 당선작>

           청국장

                                   김 미 정


할머니 방 아랫목
이불을 두 개나 뒤집어쓰고
쿨 쿨

며칠째 씻지도 않았는지
고약한 냄새가
폴 폴

누구일까?
꼼짝 않고 잠만 자는 녀석

혹?
겨울잠 자러 온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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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당선작>

       휠체어를 밀며

                          송 부 선

친구야,
무릎을 조금만 낮춰 주렴
가까이
더 가까이에서
너의 얼굴 마주보고 싶다

비눗방울처럼 날아오르는
꿈을 찾아가는 길
우리 함께 손잡고 가자

체육시간 모두들 떠나간 교실에서
나는 혼자 노는
아기 새가 된단다

그럴 때면
운동장 가득 퍼져나가는
함성을 따라
피아노 건반 위
톡톡 구르는 음표처럼
초록 잔디 위를
힘차게 달려 나가고 싶어

힘들 때마다
네가 건네준 따스한 손길
내 가슴에 물살처럼 밀려와
고여 있단다

별이 되어
빛나고 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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