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오후
양 동 진
무성했던 전설로만 떠돌던
흔적은 여기저기 상흔으로 박혀
성한 곳 없는 판잣집 같은
헐거운 몸이여!
한때 맹렬하게 분출하던 화산처럼
주체 못한 샘은
가는 실오라기 줄기로 흐르고
한때는 대단한 자부심과 수컷의 상징이었던
두터운 허벅지는 말라버린 고목처럼
달달달 간신히 버티고 있다
해안의 백화처럼 육신은
회백색의 성긴 뼈로 퇴화의 길로 치닫고
등짝에 핀 검은 꽃처럼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씩 늘어갈 때
더 이상 아픈 곳 꺼내기가
서럽다가
귀찮다가
이내 무덤덤해지고
생의 모래시계는 찼으므로
이제는 의연하게
의지 않고 걸을 것이다
휘청거리며 고요한 걸음으로 끌고 가는
노인의 뒤로, 녹슨 소리가
성긴 빗방울처럼
후드득 후드득 떨어진다
그 고즈넉한 뒷길
오토바이 한 대가
무심코 횅하니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