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양 동 진
허연 물을 허공에 뿌려대며 서슬 퍼런 칼날을 벼리며
한 방울의 인정도 없을 듯한 광기어린 눈초리로 칼춤을 추는 남자
그리고 체념한 듯 지그시 감은 죄인의 불안한 눈동자
그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건 마지막 이생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태어난 것은 동시대의 사람이로되 떠나는 시간은 차례가 없는 인생살이
어디서 한번 스쳤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잠깐 마주친 인연일지도 모를
사람이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슬픈 일이라, 아무리 태연한 척 의연한 척 해도,
맘속에 인간애의 불씨는 남아있어, 소인도 인간인지라,
마지막 가는 이의 애처로운 눈은, 공포에 떠는 눈은, 피하고 맙니다요
비록 천한 살수요, 나라의 명을 받들어 참수하는 일 밥 먹듯이 해대는
그런 비루한 인생이지만 지도 어머니 뱃속에서 놀던 만물의 영장인지라
때로는 흔들리는 심정을 길게 드리운 머리카락으로
축축한 눈시울을 살짝 감출 때도 있지요
피 끓는 사람이기에 끊어지는 숨통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볼 만큼 몰인정하지는 않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과 눈이 마주치면
내게도 남은 한자락 동정이 꿈틀대는 걸, 당신들은 아시오
낸들 이러고 싶어 이일을 업으로 하겠소만
눈과 눈이 마주치는, 각각의 절망과 절망이 만날 때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질 않소이다
쌍방을 이해하는 순간의 용서가 오고가는 찰나의 느낌을 아시오
암묵적인 눈빛들이 빚어내는 용서와 사랑
그 찰나에 오고가는 이야기는 서로의 안부를 묻듯이 이승과 저승의 작별인사를 고하며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 되겠다고 눈빛으로 약조를 하지요
죽을 자와 산자의 내밀한 대화가 이뤄지는 형장의 씁쓸함을 증언하고 싶었소
목을 베는 날이면 돌아와 잊을 만큼 술을 마시면, 죽지 않을 만큼 폭음을 한다오
날 원망 말라는 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여기고
그 날은 꼭 넉장거리로 누울 만큼 그렇게 퍼부어 대는 술이
저승길에 따라주는 이별주라 생각하고 술을 마셔줍니다
집으로 가는 길 되짚다가 달빛아래 쭈그리고 휘영청 달을 멍하니 쳐다보곤 합니다
그 잠깐의 멍한 여운이 사자를 위한 묵념이라 되새기면서
다시 휘청대며 일어나 포근한 달밤이 겨워 밤거리를 헤매다가
새벽이슬을 덮고 오슬오슬 한기도 잊어버리고 한뎃잠을 청합니다
그이에 대한 예의로 말입니다
소인도 인간이란 걸 기억해주십사하고 달에게 읍소하다가 그렇게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