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

이런 시를 남기는

풍경소리(양동진) 2011. 10. 12. 19:55

             이런 시를 남기는  



                                                       양 동 진




갈림길에서 뭔가에 의지하고 싶을 때 꺼내보고 싶은

극한의 한계에서도 문득 생각나는 

번잡한 세상사에 지치고 힘들 때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쓸쓸하게 혼자 길을 거닐다가 애인처럼 옆에 두고 싶은

어쩌다가 숲에서 길을 헤맬 때 그 막막함의 과정을 즐기게 하는

헌 책장 속에서 우연히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할 때 작은 진실이  옳다고 두둔해주는 

가을날 길을 가다가 낙엽 속에 파묻혀 침묵으로 숨고 싶을 때 조용히 다가오는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벤치에 홀로앉아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저절로 흘러나오는 

사방이 고요해 이따금 까마귀 소리만이 공원의 화음처럼 퍼져올 때 환청처럼 들리는 

뜻밖의 충격에 새파랗게 질려 있을 때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긴 줄을 서다가 문득 한사람이 새치기를 할 때 짜증내지 않고

여유로움으로 그냥 넘어가게 해주는 

번잡한 길을 걷다가 툭 어깨를 부딪치면 오히려 미안하다 웃음 짓는 마음을 갖게 하는 

옆집 아이가 시끄럽게 발 구름을 하여도 몇 번쯤은 모른 척 눈감는 인내를 주는 

초등학교 문턱만 간신히 넘어도 맞장구치며 동감할 수 있는

친구가 어려움에 처할 때  위로도 없이 그냥 시 한자락 주면 그것으로 위안이 되 주는 

물질과 경제논리로만 돌아가는 세상에 일침을 주는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보챌 때 자장가처럼 들려주는

말끝마다 욕이 배어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항상 제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돈 오천 원 밖에 없는 사람이 그 한 끼를  굶고 시집 한권 사라고 떠미는 

(아참, 요즘 시집이 만원 가까이 되더라!)

배우자가  속을 썩여도 시 한수 읊다보면 분노가 고즈넉이 가라앉는 

가진 게 평균보다 못해도 안분지족으로 행복해하는 걸 찬양하는  

현학의 과시가 아닌 타인의 삶에 아파하고 위로하며 때로 더불어 울어주는 아량이 있는

                


그런  시를 남기는, 

들꽃 같은 향기를 내내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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