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상감매죽문장진주명매병의 목독木牘
사 윤 수
그날 밤 소쩍새 소리에 처음 눈을 떴습니다
검은 허공이 실핏줄로 금이 가 있었습니다
사깃가마 속 사흘밤낮 회돌이치는 불바람이 나를 만들었지요
흙이던 때를 잊고 또 잊어라 했습니다
별을 토하듯 우는 소쩍새도 그렇게 득음하였을까요
나는 홀로 남겨지고, 돌아보니 저만치 도기盜器 파편
산산이 푸른 안개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모서리에 기러기 매듭 끈이 달린 국화칠색단 남분홍 보자기가 나를 데려 갔습니다
다포 겹처마 팔작지붕 아래 슬기둥 덩뜰 당뜰 당다짓도로 당다둥 뜰당*
거문고 소리 깊은 집 이었습니다
달빛 애애한 밤 오동 잎사귀 워석버석 뒤척이면
나는 남몰래 사수 겹머리사위체 춤을 추곤 했습지요
대숲에 댑바람 눈 설레 치고 지고 내 몸에 아로새겨진
버드나무도 당초호접무늬 봄이 수백 번 오갔습니다
여기는 커다란 하나의 무덤 그 속에 작은 유리무덤들,
이제 나는 침침 불빛에 갇혀 있습니다
내가 죽은 것인지 산것인지 나도 모르는데
날마다 많은 사람들 들어와 나를 쳐다봅니다
밖에는 복사꽃잎 붉은 비처럼 어지러이 떨어지는지**
전해주는 이 아무도 없고 그 사이로 천년의 강물 흘러갑니다
때로는 내가 흙이던 날의 기억 아슴아슴 젖어옵니다
누가 이곳에 대신 있어 준다면 나는 잠시 꿈엔 듯
다녀오고 싶건만 아, 그 소쩍새는 아직 울고 있을까요
*슬기둥 덩뜰당뜰 당다짓도로 당다둥 뜰당 : 책 <슬기둥 덩뜰당뜰 저 소리 들어보오> 에서 빌림
**매병에 새겨진 시문 장진주 가운데 挑花亂落如紅雨.
'좋은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에 박힌 못이 흘러내렸다 /사윤수 (0) | 2011.08.17 |
---|---|
빨래 마르는 시간 /사윤수 (0) | 2011.08.17 |
골목 /정미경 (0) | 2011.08.17 |
과녁 /이동호 (0) | 2011.08.17 |
바람세탁소 /최정진 (0) | 2011.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