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시각장애인/ 이강하

풍경소리(양동진) 2011. 6. 28. 10:48

 

시각장애인

 

   이강하

 

 

 

깜깜하지 않아, 나는 항상 바깥이었으니

 

내 바깥은 신비롭고 화창해

기차를 타고 가는 기다란 호수 같아

멀리 여행을 가고 싶어, 하고 노래 부르면

물결을 타고 오르는 싱싱한 배 한 척

그러나 완벽한 항해란 쉽지 않아

공연을 실수 없이 마치는 것처럼

목덜미를 스치는 그 무엇도 놓쳐선 안 돼

 

허공의 길을 더듬어 몸을 휘는 나무들

울퉁불퉁 걸음은 매초 근엄하고 신중하지

나는 슬픔을 모르는 볼록한 잎눈

어느 지팡이 미래를 연구하는 점자가 되지

어둠으로 이어지는 저녁의 길 끝, 저쪽을

훤히 열어놓고 나는 밤에도 걷지

 

두렵지 않아,

내 몸속에는 거대한 지도가 움트고 있으니

 

 

   —《시와 세계》2011, 여름호

출처 : 외출을 벗다...
글쓴이 : 워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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