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이강하
깜깜하지 않아, 나는 항상 바깥이었으니
내 바깥은 신비롭고 화창해
기차를 타고 가는 기다란 호수 같아
멀리 여행을 가고 싶어, 하고 노래 부르면
물결을 타고 오르는 싱싱한 배 한 척
그러나 완벽한 항해란 쉽지 않아
공연을 실수 없이 마치는 것처럼
목덜미를 스치는 그 무엇도 놓쳐선 안 돼
허공의 길을 더듬어 몸을 휘는 나무들
울퉁불퉁 걸음은 매초 근엄하고 신중하지
나는 슬픔을 모르는 볼록한 잎눈
어느 지팡이 미래를 연구하는 점자가 되지
어둠으로 이어지는 저녁의 길 끝, 저쪽을
훤히 열어놓고 나는 밤에도 걷지
두렵지 않아,
내 몸속에는 거대한 지도가 움트고 있으니
—《시와 세계》2011, 여름호
출처 : 외출을 벗다...
글쓴이 : 워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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