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우리가 물이 되어

풍경소리(양동진) 2010. 10. 29. 18:10

우리가 물이 되어

                                      강 은 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 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시구풀이

물 : ‘그대’와의 합일의 매개체. 화합, 생성, 정화의 상징. 메마름과 삭막함을 해소하는 이미지

가문 어느 집 : 메마른 현대 사회의 모습

키 큰 나무 : 건강하고 튼튼한 이미지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 : 물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 메마름과 삭막함을 씻어버리는 소리

저물녁 : 삶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

죽은 나무뿌리 : 불모와 죽음 황폐함의 이미지

부끄러운 바다 : 순수성을 지닌 이상향의 세계

불 : 메마름, 파괴, 황폐함, 분노의 이미지

그러나 지금 ~ 만나려 한다 : ‘불’로 만나려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세상에 불타는 것 : 불에 의해 소멸된 존재

쓰다듬고 있나니 : 불타는 것들에 대한 연민

벌써 숯이 된 ~ 쓰다듬고 있나니 : 불의 충동성과 강렬함을 부드러움으로 감싼다는 의미

만리(萬里) : ‘그대’와 나 사이의 정서적 거리

흐르는 물 : 역동적 생명력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 : 대립과 갈등의 종식

인적 그친 : 순수한, 정화된

넓고 깨끗한 하늘 ;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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