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이병기
짐을 매어 놓고 떠나려 하시는 이 날
어둔 새벽부터 시름없이 나리는 비
내일(來日)도 나리오소서 연일(連日) 두고 오소서
부디 머나먼 길 떠나지 마오시라
날이 저물도록 시름없이 나리는 비
저으기 말리는 정은 나보다도 더하오.
잡았던 그 소매를 뿌리치고 떠나신다.
갑자기 꿈을 깨니 반가운 빗소리라.
매어둔 짐을 보고는 눈을 도로 감으오.
핵심정리
갈래: 연시조. 현대시조
제재: 비
주제: 임이 떠나지 않기를 희구함
원제: 내리는 비
출전: [조선문단] 23호, 1935.
참고
시조를 혁신하자--이병기(李秉岐)
1932년 1월 23일부터 2월 4일까지 11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1925년경부터 10년간은 프로파와 민족파가 우리 문단을 할거하였다. 이 시기에 민족파에서는 시조의 부흥을 꾀하였으나 그 작품과 이론의 수준이 프로파의 주장에 비하여 열세를 면치 못하였고, 그 결과 시조의 존립의의에 대한 찬부(贊否)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집필된 것이 이 논문이다. 시조는 정형이며 고전적이면서도 오히려 시조의 존립의의는 그 정형과 고전적임에 있다고 설파하면서 명료하고 평이한 대중문학, 진실하고 신선한 사실문학(寫實文學)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시조가 혁신되어야 할 점으로, ① 실감실정(實感實情)을 표현하자. ② 취재(取材)의 범위를 확장하자. ③ 용어의 수삼(數三 : 선택) ④ 격조(格調)의 변화 ⑤ 연작하자 ⑥ 쓰는 법, 읽는 법 등 여섯 가지를 들었다. 종래의 투어(套語)나 인습적인 작법에서 벗어나자는 것, 취재의 범위를 넓혀 자기류의 작풍(作風)을 수립하자는 것, 부르는 시조보다도 짓는 시조, 읽는 시조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중심골자였다. 특히 격조에 대하여 "격조는 그 말과 소리와 합치한 그것에 있다"고 함으로써 양자의 결합관계로 고찰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발전적인 사고였다. 그러나 짓는 시조 읽는 시조를 강조한 나머지 부르는 시조와의 화해를 전연 고려하지 않은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시조의 과거가 창(唱)의 흐름이었다는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연작의 문제인데, 과거의 것은 각수(各首)가 독립된 상태였던 것을 제목의 기능을 살리고 현대시작법을 도입하여 여러 수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개, 통일되도록 짓자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창작으로 실천하여 완성한 이가 이병기 자신이었고, 오늘날 형태의 발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엄격히 보면 시조의 전통적 연작법으로서는 어긋나는 것이다.
참고
현대 시조를 정착시킨 이병기의 문학사적 업적
이병기에 의해서 시조는 현대시의 한 장르로 완전히 자리잡았으며, 문학 작품으로 음미될 수 있는 시조 작품을 획득하였다. 그의 문학사적 업적은 다음과 같다.
♠ 시조의 수사학을 완성시켰다. 그는 창(唱)이 전제가 되는 고시조와는 달리, 현대 시조는 문자로 표기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시조를 쓰는 데 제일 필요한 것으로 언어의 조탁(彫琢)를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시조를 시라고 분명히 못박고, 시는 언어의 표현이므로, 시조를 쓰기 위해서도 우리말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시조에 현대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애썼다. 그는 시조가 새로이 혁신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서, 실감 설정(實感實情)을 표현해야 하며,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고, 옛 투의 시조 용어를 바꾸고, 격조(格調)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조건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업적에 기반하여 그의 우수한 시조들은 현대시의 기본적 속성의 하나인 대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 그런 반면, 대상 자체의 즉물성에 함몰해 버린 한계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