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동굴 속의 희망

풍경소리(양동진) 2011. 11. 1. 21:04

                 동굴 속의 희망 



                                                  양 동 진





첫차를 타기위해 전철역 의자에 앉아있는

기다림에 익숙한 발자국들은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고  발바닥을 비비고 창문너머 허공에 눈길을 던지고 

또는 쪼그만 액정 속에 시선을 담그고 사각 틀 속에 잠시 갇혀  

저마다의 호수 하나 만들어 생각의 돌멩이를 던져 그 파문을 음미 한다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멍한 눈으로 흘려보다가

이내 대리석 바닥으로 시선을 곤두박질치며 눈알을 내리깔았다


 

힘겨운 아침의 출근인 듯 고개들은 졸음이 가시지 않은 하품을 막으며

수줍은 입 가림을 하는 낯선 상갓집의 분위기속에 

모두들 무관심의  습성에 빠져 외면하는 생각의 동굴 속에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다시 동굴처럼 긴 객차가 당도하면 이내 침침한 새로운 동굴로 빨려 들어가듯

사람들은 흡입 된다 나란히 앉은 승객들은 다시 또 제각각의 세계로 대문을 열고 들어가

입의 빗장을 닫는다 몰두하지 못한 눈빛들은 어떤 광고에 눈길을 묻고

또는 흐린 동공으로 그저 몽롱하게 뽀얀 지평선을 바라볼 뿐,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잘 훈련된 원숭이처럼 능청스레 눈길을 거두고 초점을 비스듬히 돌리고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들로 가득 찬 찻간은 또 과묵한 동굴이 된다

어쩌다 귀에 대고 휴대폰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마음속 공공의 껌이 되어 씹힌다 


 

무성한 정적의 숲을 거침없이 밀고 오는 잡상인 하나가

허리띠를 짝짝거리며 매달려도 안 끊긴다는,

악연도 연이라서 끊지 못한다는 노부부의 까칠한 입담처럼, 

질긴 합성피혁 띠를 향하여 삼천 원을 읊조리면 

모두들 안 산다는 듯 어렴풋한 눈초리로 갈매기의 멍한 눈이 되어 돌려지는데

마침 필요한 수요 하나가 벨트를 안성맞춤인 양  두른다 

이윽고 끌려가는 가방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다른 동굴로 들어가는

한 인생이 이른 아침의 마수걸이를 훈장처럼 매달고 발걸음에 가속을 지핀다 


 

성큼성큼 건너뛰는 보폭만큼 더 나은 보금자리로 날아갈 거라는 

꿈을 꾸는 첫차는 그렇게 희망의 씨앗들을 품고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