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풀밭에서 / 조지훈

풍경소리(양동진) 2011. 8. 21. 11:33

 

                                     풀밭에서

           

 

                                                                     조지훈

 

 

 

바람이부는 벌판을 간다.

흔들리는 내가 없으면 바람은 소리조차 지니지 않는다.

머리칼과 옷고름을 날리며 바람이 웃는다.

의심할 수 없는 나의 영혼이 나직히 바람이 되어 흐르는 소리.

 

어디를 가도 새로운 풀잎이 고개를 든다.

땅을 밟지 않곤 나는 바람처럼 갈 수가 없다.

조약돌을 집어 바람 속에 던진다. 이내 떨어진다.

가고는 다시 오지 않는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기에

나는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풀밭에 쓰러진다.

던져도 하늘에 오를 수 없는 조약돌처럼 사랑에는 뉘우침이 없다.

내 지은 죄는 끝내 내가 지리라.

아 그리움 하나만으로 내 영혼이 바람 속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