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어머니의 물감상자 / 강우식

풍경소리(양동진) 2011. 8. 21. 10:31

        어머니의 물감상자



                                    강 우 식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 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족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운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갯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십니다.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나에게는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