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한 권의 책/ 이경희

풍경소리(양동진) 2011. 8. 17. 13:11

              한 권의 책

  

                                         이 경 희

  


첫 페이지를 열면

당신의 중심이 일제히 긴장하는 게 보여요

  

단서들은 지우고 싶을 거예요

제 눈에 찔리는 것보다 무서운 가시란 없으니까요

  

문장은 자꾸 숨고 싶어요 그 때

짐짓 당신은 지워지는 척 흐릿하게 보일 거예요

힌트가 늘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지향으로만 찾아내야 하는 숙제 같은 거예요

그 순간에 조금은 캄캄해질 여름 폭우 같은 거 부디 잘 견뎌 주세요

지나고 나서야 개요는 보이는 법이니까요

  

마지막 장을 남겨둔 채 천둥 속으로

당신을 덮으면서 나는 숨이 차 올라요 그럴 때 잠시 멀리 있을 게요

빗속에 서서 잠시만 당신의 활자를 더 맞을 게요

거리란 적당한 시력을 위해 늘 필요한 일이니까요

  

각자의 행간에서 굳이 되돌아오는 길을 물을 필요는 없어요

해답이 같이 있는 퀴즈는 조금 싱겁지 않을까요

  

그러니 각기 다른 열 개의 문장으로,

  

간절한 한 개의 이유를 풀고 싶을 때는,

  

한사코 끝까지 기대해 주세요, 당신과 나의 열렬한

  

오픈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