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바람세탁소 /최정진
풍경소리(양동진)
2011. 8. 17. 11:42
바람세탁소
최 정 진
수면의 바람이 강변의 벚나무에게 옮겨간다
나무에 장이 서는지, 잎들이 소란스럽다
새벽의 퉁퉁 부은 눈꺼풀 속에 지난밤의 꿈을 담아왔다
천막을 팽팽하게 끌어당기면 물건을 팔거나 사러 온 사람들은
장에 가기 전에 읍내 하나뿐인 세탁소부터 들렀다
두고 간 옷가지에 묻어있던 주변 마을의 흙들은 저마다 조금씩 빛깔이 달랐다
그새 얼마나 컸냐, 대빗자루로 마당을 쓸듯 기침소리 앞세워
안개를 걷어내는 할아버지 내 고추 그만 만져요
발갛게 익어 떨어질 것 같잖아요
바람이 벚나무의 가지를 손보고 있다
다음 장이 서면 바람은 벚꽃을 내놓을까
보따리를 풀어놓고 할머니들은 줄지어 앉았다
수다가 들풀로 피어난 그 밭둑 사이에서 나는 보폭을 잃고 둥둥 떠다녔다
자주 길을 잃었지만 실밥이 옷자락에 묻어 나풀댔으므로, 집을 잃지는 않았다
바싹 마른 노을이 걷히면 물건을 팔거나 산 사람들은
읍내 하나뿐인 세탁소부터 들러 집으로 갔다
장터에 남은 바람이 빨랫감을 더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로 불어왔다
벚나무가지 바람이 수면으로 돌아온다
벚꽃잎 신발 한 켤레 사 신고 하류를 향해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