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이 소리 없이 그윽하게 불어온다.
어디서부터 이 바람이 시작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 수 있는 건 지평선 어디에서 불어 왔을 거라 추측만 할뿐.
누구도 그 바람의 근원지는 알 수가 없다.
심증만 있을 뿐이지 물증은 없다.
아득히 먼 수평선은 나에겐 동경의 대상 이었다.
그것은 동화책에 나오는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일수도 있고 아니면 여인들만 산다는,
제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어도 일 수도 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 중에 그는 종종 여인국 나라에 표류해서 그 곳에서 살아가는 그런 그림을 그렸다.
여인들로만 구성된 이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곳은 그에게는 매력적인 곳 일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단 한 사람도 없기에 모든 여인들은 그 사람을 칙사 대접을 한다.
항상 상다리가 휘어 지도록 음식들이 차려 올려지고 심지어는 떠 먹여 주기도 한다.
마치 왕의 시중을 드는 궁중의 생활형태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국왕을 모시는 참모진과 경호원 수행비서 등등 어떤 일도
문제 없이 그의 명령에 따라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이 모든 사람들이 어로생활을 하는지 농경 생활을 하는지 그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의 말 에 따라 모든 것 들이 척척 이루어 지는 것이 신기하고 기쁠 뿐이다.
그 나라에서도 세상에서 일어 날수 있는 일은 모두 일어났다.
전쟁이나 약탈 등등. 하지만 그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들이 속한 부족을 이어나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 남자가 그 섬에 떠밀려 오거나 하면 서로 앞 다투어 부족의 생존을 위해서,
남자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며 싸우기도 했다. 그건 쾌락을 추구 해서도 아니었고,
남자의 매력에 감탄하여서 그런 것 도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 섬에 남자의 씨가 마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생계를 위해서 배를 타는 남자들이 하나 둘씩 죽어 나가다 보니,
남자들이 사라졌구나! 하는 추측만 할 뿐 이었다.
그는 이런 생각들을 곰곰이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하루의 일과는 빠듯하게 이어져 나갔고 그저 하는 일이라곤
옆에서 시중드는 여인들과 놀고 마시고 음악과 가무를 즐기는 거였다.
물론 밤에는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 할 수 있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횟수와 시간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일정한 규칙이 있어서 혹사 당할 염려는 없었다.
그날 그날의 몸의 상태를 점검해 주는 숙련된 의사는
그를 일 거수 일 투족 기록하며 관리하고 있었다.
왕을 모시듯 지극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태도는 숙연하고 경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남자가 죽게 된다면 종족을 보존 할 수 있는
절대 절명 의 기회를 놓칠 수 있기에 그렇게 간절했던 것이다.
음악과 문학을 좋아 하는 그를 위해서 온갖 책들과 음악들이 제공 되었고
너무나 본인 중심적으로 움직여 지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봄볕이 따스한 어느 날 바람 한 점 없는 푸른 초원에 여인의 무릎에 살포시 기대어 누워있었다.
밝은 빛과 온몸에 퍼져오는 봄기운을 느끼며 감기는 두 눈.
어른거리는 노란빛과 푸른빛이 산란을 일으켜 어지러운 듯 지그시 눈을 감는다.
온몸의 나른함이 전신에 퍼져 깊은 수면의 심연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저 멀리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먼 수평선에서 희뿌연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 오르며
몽실몽실한 모양으로 점점 다가오는 듯 했다.
그 소리는 귓가에 조금씩 희미하게 속삭이듯 다가왔다.
마치 늘어진 테이프의 음향처럼.
그러다가 갑자기 고막을 찌르는 듯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너무 커서 사지를 들썩 거릴 정도였다.
그건 사람의 목소리였고 그를 부르는 듯 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몰려왔다.
낯익은 그 목소리는 갈갈하면서 힘이 넘쳤다.
여장사의 포효 같기도 하고 육중한 여자역사의 기합 소리 비슷했다.
“동 진 아 ........학교안가니, 8시다.......”
낯익은 여인의 목소리 그건 그의 어머니였다.
달콤했던 여인국의 환상적인 꿈은 거칠고 우악스럽게 다그치는 소리에
산산이 흩어져 하늘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마치 바다의 신기루처럼.
이불속에서 그 달콤했던 시간을 다시 떠올릴 요량으로 뒤척뒤척 거렸지만
두껍고 큰 어머니의 일타는 잠에서 빠져나오기에 충분했다.
통증이 등짝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자 그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움직였다.
더 큰 응징이 날아오기 전에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 하면서 짧은 이야기를 써 봤다.
이 내용은 초등학교 사춘기 즈음에 실제로 꾸었던 꿈을 바탕으로 썼다.
물론 얼토당토 한 이야기지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항상 환상의 꿈에 빠져서 살았었다.
고달픈 가정의 현실과 혼자만이 가졌던 장애 속에서 난 항상 마음속의 이상향을 그리워 했다.
그것을 충족 시켰던 것은 동화속의 나라가 되기도 했고 전설속의 섬 일수도 있었다.
그 꿈들은 내 상상의 나래 속에서
마치 몽상가처럼 바다나 산을 헤매게 하기도 했다.
불혹의 나이를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꿈을 꾼다. 종류는 다르지만 현실에서 만족 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그 속에서 채운다.
내가 혼자서 산책을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혼자만의 꿈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꿈은 내 삶의 활력소이며, 무기력함을 치유해주는 친구이자,
영원한 동반자요, 마음을 치유해주는 노련한 정신과 의사이다.
사랑하는 연인이요, 포근히 내 마음을 감싸주는 이상적인 어머니였다.
오늘도 일상의 반복적인 틀 속에서 나는 꿈을 꾸며 마음의 휴식을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