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골퍼

풍경소리(양동진) 2010. 3. 24. 19:08

그는  오늘도 푸른  매트 에  올려진  하얀  골프공을  주시하면서

채를  휘두른다. 

돈이  아까워  레슨을  받지  못해서  인지  휘두르는  폼이  왠지  어설퍼  보였다. 

채를  맞아나간   하얀 백구는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다  포물선을  그리며 이내  힘이  다하여 푸른색 그물에  떨어진다.



그는  심각한 듯 입을  씰룩거리며  한  마디  내뱉는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데..........”.

자신이  생각했던  공의  탄도와  방향성이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에 궂은   채만  만지작거리다  두터운  고무매트를  툭툭 쳐본다.

뭔가가  잘못 됐다는 걸  느꼈으나  물어볼  사람도  없고 

혼자였기에   그저  좀  잘  친다고  하는  사람들의  휘두르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작대기 하나들고  정지해  있는  공을  때려  맞추는  정도는 

  동네에서  운동 잘하기로  소문난      그에게는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레슨을   받고  있지  않지만  골프  연습장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  질수록  예상 했던 만큼의  진전이  없어서  내심  초조한  기색이었다.   더구나 

같은   시기에  시작했던  회원의  실력이  프로의  가르침을  받으며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게 보이면서

    자신에  차  있던  골프에  대한    자신감은  어느새  열등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고  급기야는   위장병  까지

얻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는  듯 이층  조립식 건물의 계단을

내려가  연습장  카운터에   다가서서  덤덤하게 말을  던진다.

“레슨비가   얼마죠”

“예  고객님,  십오 만원 이구요.  삼 개월로  끊으시면  할인해  드려요.”

얼굴에  아직도   젖살이 풋풋하게  남아있는 여사원의   맑은  목소리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짧은  순간  이지만 첫사랑의  이미지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일까?

공이  잘  맞지 않아  방금 전 까지   심드렁했던  그의  마음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기분 좋게  코치를   소개받고  철제개단을  올라가는   그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가실 줄  몰랐다.

타석에  다시  들어선  그의  모습은 한번 해 보자는 의지가 엿보였다.

다시  공을  놓고 연습스윙을  한번하고 채를  들고  날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본다.

준비  자세에  들어서서  채를  공  뒤에  슬며시  놓는다.

양  무릎은 땅에  박힌 말뚝처럼  견고하게  오므려  잡아놓고

두 손을  합장하듯  그립을  잡는다.

양손에  잡힌 그립은  몸과  주먹하나  거리를  두고  있고

두  다리는  기마자세의  형상으로  안정 돼  보인다.

천천히  채를  잡은  두 손은  타원형을  그리며  올라가고    동시에  몸통이

따라가면서  꼬아진다.

어느  정점에서  회전을   멈추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듯

클럽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허리의  회전이  먼저 돌아가면서  채가  따라오는  모습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자!  이제  공이  푸른 창공 을   향해  떠나가야 할  시간이다.

클럽은  빠르고  낮게  나는  제비처럼  다가와서  정지된  공을 날려 보낸다.

쨍! 하는  금속성 타격 음 을  뒤로하고   멀리멀리  날아간다.




  너무나  잘  맞은 타격감은  그의  손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진다.

완벽한  스윙과 부드러운 임팩트에   의기양양   스스로의  만족감에

한껏   고무되어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아,  레슨  안  받아도  되겠는걸........”


그리고  간신히  찾은  감 을 머릿속에   깊이   각인  시키려는 듯      

 연신 클럽을  휘둘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