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수선화

풍경소리(양동진) 2010. 10. 24. 19:12

          수선화(水仙花)

                   이병기(李秉岐)

       

           풍지(風紙)에 바람 일고 구들은 얼음이다.

           조그만 책상(冊床) 하나 무릎 앞에 놓아두고

           그 위엔 한두 숭어리 피어나는 수선화(水仙花)

       

           투술한 전복 껍질 바로 달아 등에 대고

           따뜻한 볕을 지고 누워 있는 해형 수선(蟹形水仙)

           서리고 잠들던 잎도 굽이굽이 펴이네.

       

           등(燈)에 비친 모양 더욱이 연연하다.

           웃으며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숭이숭이

           하이얀 장지문 위에 그리나니 수묵화(水墨畵)를.

       

 

   핵심정리

갈래  연시조, 서정시, 장별 배행 시조

성격  관조적, 서정적

구성

수선화의 개화(1연)

수선화의 모습(2연)

수선화의 그림자(3연)

제재  수선화

주제  수선화의 생명력과 기품

출전  가람 시조집(1929)

 

 

   시상의 전개

제1연은 춥고 가난한 생활 환경 속에서 수선화가 피어남을 말하고,

제2연은 수선화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제3연은 수선화가 등불에 비쳐서 장지문에 그림자가 어리는 것을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 그림으로 노래했다. 특히 이 대목의 '웃으며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숭이숭이'라는 구절에서 수선화의 고요함과 수줍음을 그윽한 내면의 덕성(德性)으로 보는 시인의 태도가 함축되어 있다.

 

 

   감상포인트

'볕'의 이미지 : 볕은 빛이라는 밝음의 상징과는 구별된다. 볕은 밝음과 함께 따스함(온도)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볕은 그늘(어두움)과 차가움에 동시에 대응된다. 이러한 볕의 이미지, 즉 맑음과 어두움, 따스함과 차가움이 교차하는 한 순간에 수선화의 생명력과 기품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해설 1

이 시조는 수선화의 생명력과 기품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1연에서 겨울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선비의 글방 책상 위에서의 개화를 묘사하였고, 2연에서는 볕을 등지고 있던 수선화가 한기 속에서도 꿋꿋한 생명력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3연에서는 등불에 비쳐 장지문에 어린 수선화가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이 시조의 격조는 다름 아닌 수선화의 기품에 있다. 수선화는 곧 선비의 멋과 정신이며 예도이다. 즉, 수선화의 생명력 또는 기품의 발견을 통하여 일종의 도에 이른다는 의미를 지닌다.  

 

 

   해설 2

3연으로 된 연시조. 수선화에 인간적 의미를 투영하여, 춥고 넉넉지 못한 삶 속에서도 기품 있게 피어나는 선비다운 모습을 노래했다. 이병기 시조의 대표적 제재는 난초, 매화, 수선화이다. 이들은 옛 시조에서도 선비들의 품격과 미의식을 표현하는 소재로 자주 쓰였는데, 이병기 역시 이러한 전통을 계승했다. 그리하여 이 제재들은 시인 자신의 정신이 투영된 식물 이미지가 되어, 어렵고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의연하게 기품을 지키는 선비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참고

시조를 혁신하자--이병기(李秉岐)

1932년 1월 23일부터 2월 4일까지 11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1925년경부터 10년간은 프로파와 민족파가 우리 문단을 할거하였다. 이 시기에 민족파에서는 시조의 부흥을 꾀하였으나 그 작품과 이론의 수준이 프로파의 주장에 비하여 열세를 면치 못하였고, 그 결과 시조의 존립의의에 대한 찬부(贊否)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집필된 것이 이 논문이다. 시조는 정형이며 고전적이면서도 오히려 시조의 존립의의는 그 정형과 고전적임에 있다고 설파하면서 명료하고 평이한 대중문학, 진실하고 신선한 사실문학(寫實文學)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시조가 혁신되어야 할 점으로, ① 실감실정(實感實情)을 표현하자. ② 취재(取材)의 범위를 확장하자. ③ 용어의 수삼(數三 : 선택) ④ 격조(格調)의 변화 ⑤ 연작하자 ⑥ 쓰는 법, 읽는 법 등 여섯 가지를 들었다. 종래의 투어(套語)나 인습적인 작법에서 벗어나자는 것, 취재의 범위를 넓혀 자기류의 작풍(作風)을 수립하자는 것, 부르는 시조보다도 짓는 시조, 읽는 시조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중심골자였다. 특히 격조에 대하여 "격조는 그 말과 소리와 합치한 그것에 있다"고 함으로써 양자의 결합관계로 고찰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발전적인 사고였다. 그러나 짓는 시조 읽는 시조를 강조한 나머지 부르는 시조와의 화해를 전연 고려하지 않은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시조의 과거가 창(唱)의 흐름이었다는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연작의 문제인데, 과거의 것은 각수(各首)가 독립된 상태였던 것을 제목의 기능을 살리고 현대시작법을 도입하여 여러 수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개, 통일되도록 짓자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창작으로 실천하여 완성한 이가 이병기 자신이었고, 오늘날 형태의 발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엄격히 보면 시조의 전통적 연작법으로서는 어긋나는 것이다.

 

 

   참고

현대 시조를 정착시킨 이병기의 문학사적 업적

이병기에 의해서 시조는 현대시의 한 장르로 완전히 자리잡았으며, 문학 작품으로 음미될 수 있는 시조 작품을 획득하였다. 그의 문학사적 업적은 다음과 같다.

시조의 수사학을 완성시켰다. 그는 창(唱)이 전제가 되는 고시조와는 달리, 현대 시조는 문자로 표기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시조를 쓰는 데 제일 필요한 것으로 언어의 조탁(彫琢)를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시조를 시라고 분명히 못박고, 시는 언어의 표현이므로, 시조를 쓰기 위해서도 우리말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조에 현대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애썼다. 그는 시조가 새로이 혁신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서, 실감 설정(實感實情)을 표현해야 하며,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고, 옛 투의 시조 용어를 바꾸고, 격조(格調)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조건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업적에 기반하여 그의 우수한 시조들은 현대시의 기본적 속성의 하나인 대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 그런 반면, 대상 자체의 즉물성에 함몰해 버린 한계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