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모사
자모사(慈母思)
정인보(鄭寅普)
[1]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2]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지 달려 삽내다
[3]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먹은 맘 다 된다기로 앞 떠날 줄 있으리
[4]
차마 님의 낯을 흙으로 가리단 말
우굿이 어겼으니 무정할 손 추초(秋草)로다
밤 이여 꿈에 뵈오니 편안이나 하신가
[5]
반갑던 님의 글월 설움될 줄 알았으리
줄줄이 흐르는 정 상기 아니 말랐도다
받들어 낯에 대이니 배이는 듯하여라
[6]
므가나 나를 고히 보심 생각하면 되 서워라
내 양자(樣子) 그대로를 님이 아니 못보심가
내 없어 네 미워진 줄 어이 네가 알것가
[7]
눈 한번 감으시니 내 일생이 다 덮여라
질 보아 가련하니 님의 속이 어떠시리
자던 닭 나래쳐 울면 이때리니 하여라
[8]
체수는 적으셔도 목소리는 크시더니
이 없어 옴으신 입 주름마다 귀엽더니
굽으신 마른 허리에 부지런히 뵈더니
[9]
생각도 어지럴사 뒤먼저도 바없고야
쓰다간 눈물이요 쓰고 나니 한숨이라
행여나 님 들으실까 나가 외워 봅니다
[10]
미닫이 닫히었나 열고 내다보시는가
중문 턱 바삐 넘어 앞 안 보고 걸었더니
다친 팔 도진다마는 님은 어대 가신고
[11]
젖 잃은 어린 손녀 손에 끼고 등에 길러
색시꼴 백여가니 눈에 오즉 밟히실가
봉사도 님 따라간지 아니 든다 웁내다
[12]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어라
[13]
썩이신 님의 속을 깊이 알 이 뉘 있스리
다만지 하루라도 웃음 한번 도읍과저
이저리 쓰옵던 애가 한 꿈되고 말아라
[14]
그리워 하 그리워 님의 신색 하 그리워
닮을 이 뉘 없으니 어딜 향해 찾으오리
남으니 두어 줄 눈물 어려 캄캄하고녀
[15]
불현듯 나는 생각 내가 어이 이러한고
말 갈 데 소 갈 데로 잊은 듯이 열흘 달포
설움도 팔자 없으니 더욱 느껴 합내다
[16]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17]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
게서 자라날 제 어인 줄을 몰랐고여
님의 공 깨닫고 보니 님은 벌써 머셔라
[18]
태양이 더웁다 해도 님께 대면 미지근타
구십춘광(九十春光)이 한 웃음에 퍼지서라
멀찌기 아득케나마 바랄 날이 언제뇨
[19]
어머니 부르올 제 일만 있어 부르리까
젖먹이 우리 애기 왜 또 찾나 하시더니
황천(黃泉)이 아득하건만 혼자 불러 봅내다
[20]
연긴가 구름인가 옛일 벌써 희미(熹微)해라
눈감아 뵈오려니 떠오느니 딴 낯이라
남없는 거룩한 복이 언제런지 몰라라
[21]
등불은 어이 밝아 바람조차 부는고야
옷자락 날개 삼아 훨훨 중천 나르과저
이윽고 비소리나니 잠 못 이뤄 하노라
[22]
풍상(風霜)도 나름이라 설움이면 다 설움가
오십년 님의 살림 눈물인들 남을 것가
이저다 꿈이라시고 내 키만을 보서라
[23]
북단재 뾰죽집이 전에 우리 외가(外家)라고
자라신 경눗골에 밤동산은 어디런가
님 눈에 비취던 무산 그저 열둘이려니
[24]
목천(木川)집 안방인데 누우신 양 병중이라
손으로 머리 짚자 님을 따라 서울길로
나다려 말씀하실 젠 진천인 듯하여라
[25]
뵈온 배 꿈이온가 꿈이 아니 생시런가
이 날이 한 꿈되어 소스라쳐 깨우과저
긴 세월 가진 설움 맘껏 하소 하리라
[26]
시식(時食)도 좋건마는 님께 드려 보올 것가
악마듸 풋저림을 이 없을 때 잡숫더니
가지록 뼈아풉내다 한(恨)이라만 하리까
[27]
가까이 곁에 가면 말로 못할 무슨 냄새
마시어 배부른 듯 몸에 품겨 봄이온 듯
코끝에 하마 남은가 때때 맡아 봅내다
[28]
님 분명 계실 것이 여기 내가 있도소니
내 분명 같을 것이 님 가신지 네 해로다
두 분명 다 허사외라 뵈와 분명하온가
[29]
친구들 나를 일러 집안 일에 범연타고
아내는 서워라고 어린아이 맛없다고
여린 맘 설움에 찢겨 어대 간지 몰라라
[30]
집터야 물을 것가 어느 무엇 꿈아니리
한 깊은 저 남산이 님 보시던 옛 낯이라
게섰자 눈물이리만 외오 보니 설워라
[31]
비 잠깐 산 씻더니 서릿김에 내 맑아라
열구름 뜨자마자 그조차도 불어 없다
맘 선뜻 반가워지니 님 뵈온 듯하여라
[32]
마흔의 외둥이를 응아하자 맏동서께
남없는 자애렸만 정 갈릴가 참으셨네
이 어찌 범절만이료 지덕(至德)인 줄 압내다
[33]
찬 서리 어린 칼을 의로 죽자 내 잡으면
분명코 우리 님이 나를 아니 붙드시리
가서도 계신 듯하니 한 걸음을 긔리까
[34]
어느 해 헛소문에 놀라시고 급한 편지
네 걸음 헛디디면 모자 다시 안 본다고
지질한 그날 그날을 뜻 받았다 하리오
[35]
백봉황(白鳳凰) 깃을 부쳐 도솔천궁(兜率天宮) 향하실 제
아득한 구름 한점 옛 강산이 저기로다
빗방울 오동에 드니 눈물 아니 지신가
[36]
엽둔재 높은 고개 눈바람도 경이랏다
가마 뒤 잦은 걸음 얘기 어이 그쳤으리
주막집 어둔 등잔이 맛본상을 비춰라
[37]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鴨綠)이라 엿자오니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38]
개울가 버들개지 바람 따라 휘날린다
행여나 저러할라 돌이고도 굴지 마라
이 말씀 지켰다한들 누를 향해 사뢸고
[39]
이만 사실 님을 뜻조차도 못받든가
한번 상해드려 못내 산 채 억만년을
이제와 뉘우치란들 님이 다시 오시랴
[40]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풀 욱은 오늘 이 살붙어 있단 말가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핵심정리
갈래 : 현대시조(연시조), 정형시, 서정시
성격 : 의고적, 회고적
문체 : 의고체(擬古體)
어조 : 후회와 그리움
심상 : 비유적 심상
제재 : 어머니
주제 : 어머니의 자애와 희생에 대한 회고와 그리움
출전: [신생(新生)1925] [담원 시조집(1948)]
해설
이 작품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과 느꺼움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첫째 수는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가를, 둘째 수는 어머니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불민함을 노래하였고, 셋째 수는 그런 자신의 심경을 어머니 부르며 달려가는 어린이를 바라보며 거기에 투사하고 있다. 자신이 그럴 수 없음에 비기면서, 또 그렇게 사랑을 지닌 태도를 칭송함으로써 어머니 그리는 마음을 더욱 절실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12연은 자식들을 위하여 찬 음식과 엷은 옷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통하여 어머니의 희생을 표현하고 있다. '보공'이 된 솜치마는 이러한 어머니의 희생과 죽음뿐만 아니라 시적 자아의 안타까움을 절절히 나타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가슴 저린 감동을 느끼게 한다. 17연은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다. 예로부터 속신(俗信)에 '아이가 잘 때 어미의 이슬이 세 번 내린다.'는 말이 전해 온다. 이 말은 자는 아이에게도 어머니의 정성은 끊임없이 쏟아 부어진다는 뜻이다. 37연은 고국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게 되는 데서 느끼는 어머니의 아픔이 '치마끈'과 '눈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수에 해당하는 40연은 헌신적인 사랑으로 가득했던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사모의 정과 자식으로서의 정성이 부족함을 자책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종장에서의 '빈말로 설은 양'은 자신의 정성이 부족함을 반어적으로 부각시켜 표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조가 그러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적인 말은 종장의 마지막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라게만 하소서'와 '나 같은 이 있으리'가 그러하며, '발 못 돌려 하노라'에서는 간절함과 애틋함이 심화되면서 종결된다.
여기에서는 작품 속에 담긴 모정(母情)에의 그리움이 시대를 초월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라는 점을 간파하는 데 중점이 있다. 또한, 시조의 전통이 오늘날에 이어지고 있음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 문학의 특질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