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열매 (오세영)

풍경소리(양동진) 2010. 10. 21. 18:31
 

열매


- 오세영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 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 문학박사. 1965년 박목월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 <적멸의 불빛>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서울대 인문대 교수, 한국시인협회장 역임.

출처 : 시암송국민운동본부
글쓴이 : 문길섭 원글보기
메모 : 시암송 국민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