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

새벽 서리

풍경소리(양동진) 2012. 4. 5. 12:18

위장병 / 양 동진



내가 살아온 흔적

고스란히 떠안고 가는

위벽의 거친 손에

가끔 멀건 흰 죽 쥐어주면

편안하다, 기분 좋다며

깜빡 졸음으로 데려가던 너


오래된 자동차 같이 

털털거리며 가긴 간다마는

매연 같은 트림과 

허름한 연비의 너는

오솔길로, 고삿길로

자주 날 데려가곤 했지     


삶을 옥죄는 느린 연동운동과  

잦아들어가는 위의 탄력 

자꾸만 위축되는 소화력도

너 이제 더는

궁상떨지 말고

쪼그려 앉지 말고 

당당히 어깨 펴고 살아가라



명창 / 양 동진



꼬불꼬불 샛길로

헝클어진 실꾸리 마음 풀러간다

지천에 꽃들이 웅성거리고

가지 끝에 걸린 구름 한 점

여유를 부릴 때

나도 짐짓 도인처럼

앉을자리 하나 꿰차고서

하늘 속 구름과 푸른 여백을 담고  

바람이 간질이는 귀밑으로

어디서 소리 꽃 펑펑 터진다

재잘재잘 유쾌한 수다가

질펀하게 흘러내리는

관목 한 그루

소리는 마구마구 피어오르는데

배후가 없다, 쥔은 어딜 가고

지저귐만 울려대는 나무속엔 

얼굴 없는 새가 목울대를 잡고

아침 소리를 한다

득음에 도달하려는지

쉼 없이 거침없이

아침마다 창을 한다.



새벽 서리 / 양 동진


아침 운동 하러 둑에 간다

안개가 서성거리는 새벽

띄엄띄엄 오가는 운동화들

갓 지은 밥맛의 당김 같은 

신선한 공기 맡으러

꿀벌처럼 바지런한 발자국들

밤새 안개꽃 피워낸 호수

나는 눈으로  주워 담고서

몸이 좋아하는 길을 간다

마음이 좋아하는 길을 간다  

갈대밭 머리 하얗게 셌다 

중년의 내 머리처럼



방죽 / 양 동진


거북한 세상 등지고

속이 느끼해 어둠속으로

마음 숨긴다

캄캄한 밤의 뜰엔

바람과 나 둘이서 앉아

하루의 시름 두런거리고 

간간이 시샘하듯

자동차 불빛이 훼방을 놓지만

고개 젖힌 하늘엔 별빛 달빛이

동공을 다독이며 어루만지네. 

고요의 공기를 마시러 둑에 간다

매일 젖어드는 얼굴 피지 같은

마음 때 벗기러  그곳에 간다

거기 세상엔 없는 재미난 것들 지천이다.

 

 

용치놀래기  / 양 동진



한 번도 화끈하게 물지 않는

새침한 여자 같은 

넘어올 것 같으면서

결코 

덥석 물지 않는 너 


깨작깨작 

미끼만 물었다 놨다

흐물흐물 해질 때까지

지렁이 몸뚱어리

세차게 흔들다 가는 너


화려한 얼룩무늬 옷에

나선형 몸매의 춤사위는

얼마나 유려한지,

태극권의 부드런 곡선을 닮았지  


미끼하나 던져두면

밉살스럽게 다 헤쳐 놓아 

놀래기 몰려드는 곳, 피해 다니는

나는야 

꼬마 낚시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