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서리
위장병 / 양 동진
내가 살아온 흔적
고스란히 떠안고 가는
위벽의 거친 손에
가끔 멀건 흰 죽 쥐어주면
편안하다, 기분 좋다며
깜빡 졸음으로 데려가던 너
오래된 자동차 같이
털털거리며 가긴 간다마는
매연 같은 트림과
허름한 연비의 너는
오솔길로, 고삿길로
자주 날 데려가곤 했지
삶을 옥죄는 느린 연동운동과
잦아들어가는 위의 탄력
자꾸만 위축되는 소화력도
너 이제 더는
궁상떨지 말고
쪼그려 앉지 말고
당당히 어깨 펴고 살아가라
명창 / 양 동진
꼬불꼬불 샛길로
헝클어진 실꾸리 마음 풀러간다
지천에 꽃들이 웅성거리고
가지 끝에 걸린 구름 한 점
여유를 부릴 때
나도 짐짓 도인처럼
앉을자리 하나 꿰차고서
하늘 속 구름과 푸른 여백을 담고
바람이 간질이는 귀밑으로
어디서 소리 꽃 펑펑 터진다
재잘재잘 유쾌한 수다가
질펀하게 흘러내리는
관목 한 그루
소리는 마구마구 피어오르는데
배후가 없다, 쥔은 어딜 가고
지저귐만 울려대는 나무속엔
얼굴 없는 새가 목울대를 잡고
아침 소리를 한다
득음에 도달하려는지
쉼 없이 거침없이
아침마다 창을 한다.
새벽 서리 / 양 동진
아침 운동 하러 둑에 간다
안개가 서성거리는 새벽
띄엄띄엄 오가는 운동화들
갓 지은 밥맛의 당김 같은
신선한 공기 맡으러
꿀벌처럼 바지런한 발자국들
밤새 안개꽃 피워낸 호수
나는 눈으로 주워 담고서
몸이 좋아하는 길을 간다
마음이 좋아하는 길을 간다
갈대밭 머리 하얗게 셌다
중년의 내 머리처럼
방죽 / 양 동진
거북한 세상 등지고
속이 느끼해 어둠속으로
마음 숨긴다
캄캄한 밤의 뜰엔
바람과 나 둘이서 앉아
하루의 시름 두런거리고
간간이 시샘하듯
자동차 불빛이 훼방을 놓지만
고개 젖힌 하늘엔 별빛 달빛이
동공을 다독이며 어루만지네.
고요의 공기를 마시러 둑에 간다
매일 젖어드는 얼굴 피지 같은
마음 때 벗기러 그곳에 간다
거기 세상엔 없는 재미난 것들 지천이다.
용치놀래기 / 양 동진
한 번도 화끈하게 물지 않는
새침한 여자 같은
넘어올 것 같으면서
결코
덥석 물지 않는 너
깨작깨작
미끼만 물었다 놨다
흐물흐물 해질 때까지
지렁이 몸뚱어리
세차게 흔들다 가는 너
화려한 얼룩무늬 옷에
나선형 몸매의 춤사위는
얼마나 유려한지,
태극권의 부드런 곡선을 닮았지
미끼하나 던져두면
밉살스럽게 다 헤쳐 놓아
놀래기 몰려드는 곳, 피해 다니는
나는야
꼬마 낚시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