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

사과누에벌레

풍경소리(양동진) 2012. 2. 14. 20:51

사과누에벌레 



                                      양 동 진




불콰하게 물든 거리를 걸었다

나뭇가지 새로 햇살 따가워

그늘 찾아 두리번거리다

움푹 들어간 움집하나 보고선

노크도 없이 들이밀었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내가 확 끼치고  

나는 코를 박고 머리를 디밀고 

단단한 각질을 갉으며 굴을 팠다

그 속 둥지 틀고 있는 터줏대감

화들짝 놀라 부지깽이 들고 나온다 

나가라고, 나가라고 바락바락 소리 질러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


꿈속 나비로 훨훨 나는, 애벌레 한 마리 보았다

 

 

 

                                               짱구 / 양 동진

성북구 하월곡동엔 짱구가 산다
뒷골목 주먹하나로 우둑 선 그
맞장을 뜨면, 결코 무릎 꿇지 않는
그 한방의 위력, 아는 사람은 안다
깊게 굴곡진 정권이 면상을 스칠 때
짜르르 전기가 흐르고, 끈적끈적한 게 흐른다
고통은 쓰지만 깨달음은 다디달듯
꼬소한  참깨 맛 난다, 한때 아류들이 설쳐댔으나
원조의 고소함으로 물리쳤다, 그가 야구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입맛을 다신다
한쪽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원조는 살아있다는 듯
삼양파 두목 짱구
삼류들의 도전 언제든 받아주마
참깨 박힌 골 깊은 주먹맛 보여 주마
성북구 하월곡동엔, 왕 주먹 짱구가 산다


                           

                                              빼빼로 / 양 동진

 

 

 

매끈한 다리 예쁜 세자매가 있었네
허연 살결이 관능적이던 그녀는 누드빼빼로
달달한 쵸코 색 스타킹 즐겨 신던 오리지날 빼빼로
다리가 울퉁불퉁 피부엔 검은 여드름 많던 아몬드 빼빼로

 

11월 11일엔 그녀들의 모임 날
한껏 멋을 부린, 화려한 레이스와 핑크빛 머리띠를 둘러맨
아, 아리따운 그녀들, 쭉쭉 뻗은 다리에
눈이 쏠린다, 마음이 쏠린다, 침도 흘린다

 

간밤, 그녀들과 질펀한 사랑 나누었네
입언저리 키스의 흔적, 깊고 깊은 달콤함에
날 새는 줄 몰랐네

 

쾌락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는 법 

등골 다 빼먹는 그녀의 치명적 매력
끊을 수 없는 그녀의 맛
충족된 욕망의 뿌리에서 뼈가 녹는다

깊게 파인 가슴이
시리다 시려, 공허한 내면이,
유혹의 뒤끝은 
항상 시린 바람을,
허물어지는 풍치를 낳는다

 

 

                  잠깐만요 / 양 동진


 

 

앳된 단발머리가 술을 꺼낸다

확인해야지 맘 다잡고

그녀는 파릇한 술병들 살포시 올려놓고

나는 취조하는 형사가 되고

신분증이요!

아, 전번에 확인 했는데요

수법 1-3 번  이란 걸 나는 안다

태연하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잠깐만요!

금방 나갔다 올 것 같은

그 맑고 경쾌한 소리

이슬처럼 맑구나

서운한가, 씁쓸한가

소주 세병 웅크리고

그녀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이슬녀라 부른다.


 

                   뿌셔뿌셔 (오뚜기) / 양동진


 

옆집에 부부싸움 났어요

와장창, 와장창

가재도구 날라 다녀요

악다구니 아내, 버럭버럭 내질러요

부셔, 부셔, 다 부셔

폭풍 같은 밤이 걷히고

아내는 눈언저리

푸른 바다를 그려놓고

남편은 연신 고개만 숙인 채

말이 없고

아이는 주섬주섬 가방 챙겨들고

학교에 간다

폭풍주의보 속,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아이가 중얼거리며,

750원 뿌셔뿌셔

눈물 소금에 찍어 먹는다



까메오 (오리온)/ 양 동진


푸른 종이 재킷이 

참 잘 어울렸던 너

까만 속 피부에

희디흰 크림이 배어있었지

까맣다는 이유로, 특이함으로

은근하게 너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지

오랜만에 귀퉁이에 서 있던

너를 보고서 조금 놀랐다

부쩍 키도 졸아들고

맘고생으로 여위였더구나!

너의 입술에 바코드로 키스를 했지

가격은 그대로구나

몸값을 헤아리느라

그렇게 해쓱한 거구나!

너, 

다시 너를 찾지 않을까봐

마음고생해서 그렇구나!

걱정 마, 내 마음 흔들림이 없으니

오늘도 너를 까서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