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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래된 가구 / 마경덕

풍경소리(양동진) 2012. 2. 1. 21:02
오래된 가구

마경덕



짧은 다리로 버티고 선 장롱
두 장정(壯丁)의 힘에 밀려
끙, 간신히 한 발을 떼어놓는다
움푹 패인 발자국 네 개
한 자리를 지켜온 이십 년의 체중이
비닐장판에 찍혀 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들여다본
허름한 목판(木版)
긁히고 멍든 자국이 드러난다
나무의 속살에 이렇듯 상처가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문짝에 틈 하나를 내주고
서서히 기울고 있었구나
머리맡에 서 있는 네게 기대어
책을 읽고 아이를 낳고 TV를 보며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었다

열 자나 되는 몸통을 지붕 아래 세우고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 한 그루
어깨를 안아보니
우듬지로 오르는 물소리 들린다
오래된 가구는
아직 숲을 기억하는지
발 아래 무성한 그늘을 떨어뜨리고


마경덕 1954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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